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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서양 미술사 /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곰브리치 지음/ 백승길,이종승 옮김 / 예경

 

책장의 장식으로만 사용되는 서양미술사를 읽다.

 

서양 미술의 시작은 이집트이다.

머리는 옆으로 보여질 때 가장 쉽게 볼 수 있기 대문에 옆 모습을 그렸다. 정면에서 본 눈이 얼굴의 측면 그림에 그려져 있다. 신체의 상반신, 즉 어깨와 가슴은 정면에서 그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다. 그래야만 두 팔이 몸에 어떻게 붙어 있는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에서 사람이 그처럼 이상하게 평면적으로 왜곡되어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집트의 미술가들은 양쪽 발을 시각화 하는 일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엄지 발가락으로부터 위쪽으로 연결되는 발의 분명한 윤곽선을 그리기를 더 선호했다. P.61

 

이집트의 양식은 대단히 엄격한 법칙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미술가는 그것을 어려서부터 배워야만 한다. 좌상의 경우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야 하며, 남자의 피부는 여자의 피부보다 더 검게 칠해야 한다. 모든 이집트 신들의 모습도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하늘의 신인 호루수는 매나 매의 머리 모양으로 그려야 하며, 장례의 신인 아누비스는 자칼이나 자칼의 머리 모양으로 표현해야 했다. 그리고 모든 미술가들은 아름다운 문자 필기를 배워야만 했다. 그들은 상형 문자의 형상과 상징을 명확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돌에 새길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가 일단 이러한 규칙을 완전히 터득하게 되면 그의 수습 생활은 끝난다. 아무도 그가 배운 것과 다르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또 그에게 독창적인 것을 요구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와는 반대로 과거에 추앙을 받았던 기념비들과 가장 비슷한 조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미술가로 간주되었다. P.65

 

 

 

파르테논 신전

익티노스 설계

기원전 450년경

도리아식 신전

P.83

 

이오니아식 신전들의 기본형은 도리아 식과 같지만 전체적인 외관과 성격이 다르다. 이러한 점을 가장 완벽하게 보여주는 건물이 에렉테움 신전(P.100) 이다. 이오니아 식 신전의 원주들은 도리아 식 신전의 원주들보다 견고하고 강한 느낌이 훨씬 덜하며 보다 날렵하고 갸날픈 기둥으로 보인다. 주두는 더 이상 단순하고 장식이 없는 쿠션 형태가 아니라 양 옆이 나선형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이 장식이 다시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대들보를 지탱하는 기능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오니아 식 건물들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세부와 더불어 전체적으로 한없이 우아하고 아늑한 인상을 준다.  P.99

 

콜로세움 (Colosseum)

P.118   80년경, 로마

1층은 도리아 식의 변형으로서 메토프와 트리글리프까지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2층은 이오니아 식이고, 3층과 4층은 코린트 양식의 반원주 이다. P.117

 

로마 건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아치의 사용이다. 그리스 건축가들도 이미 알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리스 건축에서는 아치가 거의, 아니 전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쐐기 모양의 돌로 하나하나 아치를 쌓아 올리는 일은 토목공학이 이루어낸 대단히 어려운 업적 중의 하나이다. .... 다리나 수로의 기둥들 사이를 아치를 연결시킬 수 있었으며 심지어 이런 방식을 사용해서 궁륭( vault) 으로 된 천장을 만들 수도 있었다. 이런한 건물 중에서 가장 경이로운 것이 판테온 (Pantheon)  이라 불리우는 만신전이다. P.119 

 

판테온 내부

130년경

P.120 

 

로마네스크

1066년. 노르망디의 월리엄 공이 영국을 정복한 해

영국의 새로운 영주가 된 사제들과 귀족들은 수도원과 교회당을 건립해서 그들의 힘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건물들을 세운 양식은 영국에서는 노르만( Norman) 양식으로, 유럽 대륙에서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 양식은 노르만 침략 이후 백 년이상나 번창하였다.  P.171

 

이런 교회가 주는 내부와 외부의 전체적인 인싱은 중후한 힘이다. 장식도 거의 없고 창문도 몇 개밖에 없었으며 중세의 성체를 연상시키는 견고하고 잇달은 벽과 탑뿐이었다. 이교도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얼마 전에 개종한 농민과 전사들의 땅에 세워진 이 강력하고 도전적인 석조 건물들은 바로 '전투적인 교회'라는 관념, 즉 이 지상에서 최후의 심판날 여명이 밝을때까지 ... P.173

 

뮈르바크의 배네딕투스 교단 수도원 유적

1160년경, 알사스

P.172

 

고딕(Gothic)

가느다란 기둥과 좁다란 늑재(rib)정도로 새운 종류의 교회를 짓는다. 12세기 후반 북부 프랑스 P.185

신자들은 설교와 찬송가를 통해서 진주로 만든 문과 값진 보석, 순금과 투명한 유리로 된 천상의 예수살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이제 그런한 광경이 하늘로부터 지상에 내려온 것이다. 이 성당들의 벽은 차갑거나 가까이하기 어렵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성담의 벽은 루비나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스테인글라스로 만들어졌다. 기둥과 늑재, 창의 트레이서리 장식은 황금빛으로 빛났다. 육중하고 세속적인이고 단조로운 것은 모두 제거되었다.   P.189

 

고딕교회당 창문

생트샤펠 대성당 1248년

파리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1163-1250년

고딕 성담

 

고딕 조각의 실물과 같은 조각상들을 회화에 대입시킬 수 있었다. 이처럼 천재적인 이탈리아 미술은 피렌체의 화가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7-1337)에서 확인된다. 대개 조토와 더불어 새로운 장을 시작하는 것이 통례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 위대한 화가의 출현으로 완전히 새로운 미술의 기원이 시작되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의 역사에서는 새로운 장이나 새로운 시작은 존재하지 않는다. P.201

 

 조토 디 본도네

<신앙> 1305년경

파도바의 델아레아

 

르네상스 건축

브루넬레스키(1377-1446)는 원주와 벽기둥과 아치를 자기 식대로 결합해서 그 이전의 건물과는 전혀 다른 경쾌하고 우아한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고전적인 박공을 가진 문틀과 같은 디테일을 보면 브루넬레스키가 얼마나 주의깊게 판테온과 같은 고대의 유적들을 연구했는지 알 수 있다. 아치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으면 그것이 벽기둥이 나 있는 위층에 어떻게 들어맞는지를 비교해보라. 교회안으로 들어가면 그가 로마 형식들을 어떻게 연구했는지를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밝고 균형이 잘 잡힌 실내에서는 고딕 건축가들이 그처럼 높이 평가했던 특징들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P.226

 

또 하나의 획기적인 발견으로 그 수 백년간 미술을 지배했던 원근법의 발견!!!

 

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 1390-1441)

같은 세대의 남유럽의 미술가들, 예컨대 피렌체의 브루넬레스키 주변의 거장들은 자연을 그림 속에 거의 과학적인 정확성을 가지고 묘사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들은 원근법적ㅇ니 선으로 틀을 짜는 것으로 시작해서 해부학과 단축법의 법칙에 관한 지식을 통해 인체를 구축해갔다. 반면 반 에이크를 정반대의 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그림 전체가 가시적인 세계의 거울처럼 될 때까지 끈기를 가지고 미세한 세부까지 묘사 하면서 자연의 환영을 만들어냈다. 북유럽과 이탈리아의 미술은 이런면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차이를 보여왔다. 물건이나 꽃, 보석 또는 천의 아름다운 표면을 묘사하는데 뛰어난 작품들은 대개 북유럽 확가, 특히 네덜란드 확가 그린 것이고, 반면에 대담한 윤곽선과 원급법이 명확하며 인체의 아름다움을 확실하게 파악한 그림은 이탈리아 화가의 작품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P.239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1452-1519)

라틴어는 거의 모르고 그리스 어는 전혀 몰랐다. 대학의 학자들이 존경받는 고대 저술가들의 권위에 의지하고 있을때 화가인 레오나르도는 자기가 읽은 것으로 자기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문제에 부딪치게 되면 권위자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언제나 그것을 실험으로 해결했다. P.293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Michelangelo Buonarrot : 1475-1564)

 

라파엘로 산티 (Raffaello Santi : 1483-1520)

 

이탈리아 거장들의 위업

1. 과학적인 원근법의 발견

2. 아름다운 인체를 완벽하게 표현하도록 하였던 해부학에 관한 지식

3. 고전 시대의 건축 형식에 관한 지식   P.341

 

알브레히트 뒤러 (Albrecht Durer: 1471-1528) 독일

진정한 미술가라면 미술의 새로운 원칙을 철저하게 이해하고 그 원칙의 유용성에 대해서 자기 나름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충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P.342

 

루벤스 (1577-1640)

이태리 유학, 네덜란드 화가

 

 Picturesque

소박한 풍경 속에서 '한 폭의 그림' 같은 곳을 볼 수 있도록 가르쳐준 사람은 바로 네덜란드 화가들이었다. 시골길을 산책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에 보이는 것에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처음으로 가식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우리의 눈을 뜨게 만든 이 겸허한 거장들 덕분에 누리는 희열이다.  P.420

 

렘브란트 반 레인 (Rembrandt van Rijn: 1606-1669)

성공적이고 인기있는 화가였던 젊은 시절부터 파산의 비애와 진실로 위대한 인간으로서의 불굴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외로운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생애에 관한 놀라운 기록인 일련의 자화상들을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자화상들이 일종의 독특한 자서전인 셈이다. P.420

 

바로크

16세기 후반에 델라 포르타가 설계한 예수회 교단의 교회에서 바로크 양식의 건축이 시작되었음을 기억한다. 델라 포르타는 보다 많은 다양성과 인상적인 효과를 살리기 위해서 소위 고전적인 건축의 규칙이라는 것을 무시해 버렸다. 일단 예술이 이러한 길로 접어들면 계속해서 그 길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다양하고.. 더 복잡한 장식과 더욱 놀라운 아이디어를 고안해내야만 했다.   P.435

 

프란체스코 보로미니(1599-1667)가 그의 조수들과 건립한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 교회이다. (P.436  산티 아그네스 성당. 1663년. 로마) 사실은 르네상스 형태를 채용했다. 중앙 입구를 고대 신전의 정면 형태로 만들고, 양쪽으로 벽기둥의 수를 배로 늘렸다. 거대한 둥근 지붕을 만고 그 양쪽으로 두개의 탑과 정면을 세움으로 해서 서로 다른 형태들을 모아 교회를 구성했다. 두 개의 탑 아래층은 사각형이고 위층은 원형이며 ..... P.435

 

베르사이유가 바로크 양식인 것은 그 장식적인 세부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거대한 규모 때문이다. 건축가들은 이 건물의 거대한 덩어리를 좌우 날개 부분으로 나누어 배치하고 각 익부에는 고상하고 장엄한 외관을 부여하는데 주력했다. 주요층의 중심부를 이오니아 식 열주로 악센트를 주고 그 열주들이 떠받치고 있는 엔타블레이처 위에는 일렬로 조각상들을 놓았다. P.447

 

베르사이유 궁 P.448

1655-1682년

 

로코코 (Rococo)

로코코는 바로크 시대의 호방한 취향을 이어받아 들뜬 경박함 속에 표현되는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장식의 유행을 말한다. P.454

 

18세기 중반 이전의 미술가들은 주제에 있어서 이러한 좁은 한계를 벗어난 적이 거의 없었다.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사랑 이야기 따위의 한 장면이나 중세나 당대의 역사적 일화를 그리는 일이 그토록 드물었던 것은 신기할 뿐이다. 이런 모든 것들은 프랑스 대혁명 시대에 매우 급속히 변해버렸다. 감자기 미술가들은 세익스피어 작품의 한 장면에서부터 시시적 사건에 이르기까지 상상력에 호소하고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을 그들의 주제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P.481

 

영국의 시민적인 자유는 중세 시대에 쟁취되었으므로 자유의 상징인 의사당도 중세 고딕 양식을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P.500

 

비평가들이 인상주의자들의 작품을 비웃지만 말고 그것으로 사놓았더라면 그들은 큰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평은 다시는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위신을 잃게 되었다. 인상주의자들의 투쟁은 이제 새로운 미술 운동을 일으키려는 모든 혁신자들의 소중한 전설이 되어 필요할 때는 언제나 일반 대중이 새로운 방법을 인식하지 못했던 하나의 일례로 지적되었다.  P.522

 

인상주의자의 조력자

1. 사진

2. 일본 채색 목판화  P.524

 

철과 유리로 된 새로운 건축양식

빅토르 오르타 (Victor Horta : 1861-1947)

좌우대칭의 원칙을 버리고 우리가 이 책의 동양미술편에서 살펴보았던 굽이치는 곡선의 효과를 활용하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모방자가 아니었다. 그는 이 곡선들을 현대의 요구에 맞는 철제 구조물에 옮겨 놓았다. 브루넬레스키 이래 완전히 새로운 양식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새로운 창안은 매우 자연스럽게 아느 누보와 동일시 되었고,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  P.536

 

인상파 화가들의 목적도 르네상스 시대에 이루어진 자연의 발견 이래로 계속 발전해온 미술의 전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 역시 자연을 보이는대로 그리기를 원했다. 그들이 벌인 보수적인 대가들과의 논쟁은 그 목적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대한 것이었다.  P.536

 

폴 세잔 ( Paul Cezzanne: 1839-1906)  현대미술의 시작

견고함과 깊이감을 전해주고자 했으며 종래의 전통적인 소묘 방법이 아니더라도 그것이 가능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 자신도 '정확한 소묘'를 무시한 이 순간이 미술사상 대전환의 시발점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P.544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

고흐가 사용한 붓놀림 하나하나는 단지 색채를 본할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격앙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P.547

 

세잔은 정물을 그릴때 형태와 색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고자 했고 자신의 특수한 실험에 필요할 때에만 이른바 '정확한 원근법'을 포기했다. 반면에 고흐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려 했고, 이러한 목적을 이루는데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형태를 왜곡시켰다.  P548

 

폴 고갱 (Paul Gaugin: 1848-1903)

낯설고 이국적인 것은 단지 작품의 주제만이 아니다. 그는 원주민 정신 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물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는 토착민 장인들의 수법을 연구하고 때로는 자신의 작품 속에 그들의 것을 묘사하기도 했다. 그는 자기가 기린 원주민의 초상을 그러한 '원시'미술과 조화시키려 애썼다. 그래서 그는 형태의 윤곽을 단순화하고 넓은 색면에 강렬한 색채를 거침없이 구사했다.  P.551

 

세잔의 해결 방법은 결국 프랑스에 기원든 입체주의 (Cubism)을 일으켰고, 반 고흐의 방법은 독일 중심의 표현주의 (Expressionism)을 일으켰다. 고갱의 해결 방법은 다양한 형태의 프리미티비즘(Primitivism) 을 이끌어냈다.  P.555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현대 건축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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